논농사를 짓는 동안 한자리에서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평안하신지요? 

햅쌀을 나눠먹는 이웃들에게 감사와 안부 인사를 전합니다. 

올 해 논농사는 이렇게 지었습니다. 



4월에는 소금물 비중으로 가려낸 튼실한 볍씨를, 뜨거운 물에 소독하고, 찬물에서 싹을 틔워 모판에 뿌렸습니다. 볍씨를 고르는 일부터 모를 키우는 일까지는 제가 다녔던 풀무학교 생태농업전공부 선생님들과 후배들에게 신세를 졌습니다. 올 해 벼품종은 다시 '추청'입니다.


5월, 논에다 유박으로 거름을 내고 갈아엎었습니다. 해마다 하는 일이지만 올 해는 유난히 질문이 많았습니다. 트랙터로 30분만 하면 쉬운데, 왜 굳이 나는 경운기에 쟁기를 달아 2박3일동안 논을 갈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돈을 조금 들이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힘들여가며 괜한 고집을 피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은 결국 나는 왜 농사를 짓고 있는가? 라는 물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저런 답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을 보니, 이제 슬슬 농사일이 힘에 부치는 것 같습니다.


마른 쟁기질을 하면서, 깨진 유리조각을 두어개 발견했습니다. 한 달후에 아이들이 맨발로 들어와서 모내기를 할 논인데, 미리 발견해서 다행이었습니다. 땅 속에서 꾸물거리는 미꾸라지도 여럿 보았습니다. 땅을 밟고 쟁기를 몰지 않았다면 볼 수 없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논둑을 두텁게 쌓아올렸습니다. 논물을 깊이 대면 풀나는 것을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정교한 기술은 아니지만, 나름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 노하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논둑에서 뛰어놀았습니다. 슬슬 나타나기 시작한 논생물들을 찾고, 두꺼비 알집을 발견하고, 그러다가 아예 물댄 논에 들어와 뛰고 구르고 흙탕물을 뒤집어쓰며 신나게 놀았습니다. 한번은 경운기 연장을 키순서대로 놓고 실로폰 치듯이 연주를 하고 노는데, 정말이지 경이로웠습니다 그 순간을 영상으로 담아두지 못해 두고두고 아쉽습니다. 


일하는 동안 곁에서 아이들이 뛰어 노는 모습을 보는 것, 그리고 제가 일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 생각할수록 스스로에게 뿌듯하고, 아이들에게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댄 논을 가는 일은 여름울네 논 근처에 사시면서, 털보가 혼자 경운기로 논 일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신 채승병아저씨께서 올해도 트랙터로 갈아주셨습니다. 


6월, 올해도 어김없이 홍동중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 백여명이 한꺼번에 논에 들어와 길다랗게 한 줄로 서서 손모내기를 했습니다. 논에 들어온 이상 두어시간동안 앉지도 못하고 (아, 몇몇은 아예 털썩 주저 앉기도 했습니다만) 일을 해내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들기도 했을텐데, 서로의 얼굴과 등짝에 진흙도 묻혀가며, 고래고래 노래도 부르며 재밌게 모내기를 마쳤습니다.

7월, 우렁이를 넣어서 풀을 잡았습니다. 손김도 조금 맸습니다. 

8월, 큰비바람 없이 잘 지나갔습니다. 논둑에 자란 풀을 두어번 베 주었습니다.

9월에는 비가 적게 오고, 볕이 좋았습니다. 덕분에 결실을 잘 맺었습니다. 

10월, 풀무전공부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추수를 했습니다. 나락은 햇빛과 바람으로 말렸습니다.  농사를 잘 지었다고 선생님에게, 쌀이 정말 깨끗하다고 정미소 아저씨에게 칭찬을 들었습니다.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올 해도 여러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 한 해 농사를 잘 지었습니다. 고맙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여름이네 농사일기 sonong.tistory.com에 오시면 한 해 농사를 어떻게 지었는지 사진으로 보실 수 있도록 올려두었습니다.  나락 중에 홍미가 아주 조금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매년 종자를 이어 받아서 쓰다보면, 간혹 원종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해로운 것은 아니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족한 농부가 나누는 쌀입니다만 아무쪼록 귀하게 여겨주시기를,

맛있게 드시고 늘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2015년 입동지나고 최문철, 수영, 여름, 여울이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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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2015년 논농사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논 갈이 시작!


이웃집 아랫논에서 논생물을 찾고있는 여름군.


풀무전공부 시절, 아사코가 선물해준 물장화를 5년 동안 잘 썼습니다. 이번에는 재혁이가 물장화를 선물해주었습니다. 단단한 발바닥 때문에 일하기 좋습니다.



아빠는 논 갈고, 아이들은 경운기 연장으로 실로폰 치고.




재밌겠지용^^


논을 갈아야하는데, 비가 왔습니다.



그래서 쇠바퀴로 바꿔달고 마저 갈았습니다.


논을 갈다가 깨진 유리병조각을 발견했습니다. 휴다행입니다!


미꾸라지도 종종 고개를 내밉니다. 내년에는 경운기에 통을 달아놓고 미꾸라지 잡아가면서 쟁기질을 해야겠습니다.


휴, 다 갈았다...


논 물을 대고, 논둑 바를 준비를 합니다. 논둑을 걸어가는 딸아이의 뒷모습. 지금도 뭉클하지만, 몇년이 더 지나면 눈물이 쏟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마운 풍경입니다.


이번엔 또 무얼찾고 있니?


ㅎㅎ 논지점프!


아, 얼마나 신나고 재밌었을까요? 저 표정을 보고있자니, 행복합니다.


네, 뽀샵 좀 했습니다^^ 논둑 다 바른 기념으로. ㅋㅋㅋ


고마운 승병아저씨, 아니 우리마을의료생협 이사장님!


아랫논 아저씨. 그냥 거기 계시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합니다. 건강하셔야해요.


딱 이맘때 하룻밤 또는 몇시간만 볼 수 있는 귀한 풍경이에요. 하늘에 모판이 둥둥 떠있는 신기한 느낌. 퐌타스틱!


올해도 중학교 아이들과 함께 모내기를 했습니다. 올해는 1, 2학년이 마주보고 시작했지요.


저 뒷편에 있는 친구들은 3학년. 이 아이들중에는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때부터 저와 모내기를 했던 아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세월 참. ㅋㅋㅋ


햇살에서 세워준 플래카드. 아이들은 이미 농담인줄 알고 있는데, 선생님들이 진담으로 받아들이셔서 쫌 ㅋㅋㅋ


아, 아름답습니다.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개인적으로는 올 해 가장 기억에 남을 사진이에요.


해충담당! 고마운 녀석~


안개 낀 아침 논.


안개낀 아침에 이슬이 잔뜩 맺힌 수크령. <풀을 묶어서 은혜를 갚다>라는 뜻의 결초보은(結草報恩)에 나오는 풀이 바로 이녀석이라고 합니다.


바심하기 전에 마지막 논둑풀깍기. 이 시기에 괜한 일이긴 합니다만, 추수를 앞 둔 논을 반듯하게 단장해주고 싶었습니다.


올 해도 풀무전공부에서 바심을 도와주셨습니다. 벼가 깨끗하다고 칭찬을 들었지요^^


올 해도 햇볕과 바람에 벼를 말렸습니다. 여섯살 딸아이도 이제는 큰 몫을 합니다.


벼말리는 도중에 비가와서 비닐로 꽁꽁 덮어두기도 했습니다.


아홉살 아들래미야 긴말 필요없지요. 한사람 몫을 제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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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야기도 좀 전하고 싶습니다. 


풍년이지만 수매가격이 많이 떨어졌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풍년이라 농부들 돈 좀 벌게 생겼네'가 아니라, '작년처럼 벌려면 올해는 일을 더 많이 해야허게 생겼네'라는 뜻이지요. 마침 올 해는 쌀수입 전면개방 첫 해이기도 합니다. 저보다 훨씬 전부터 들판에 서 있던 선배 농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질문을 해오셨겠지요? '내가 왜 이땅에서 여적까지 농사를 짓고있나' 하고요...


한 해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묻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 이런 풍경들을 또 어떻게 보겠어?' 대답합니다. '그말이 맞기야 하다만, 먹고 살만해야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돈 말고 논 보면서 버틴 것도 벌써 오래전일이여...'


제 이야기를 끝까지 다 보셨으면, 이제 뉴스타파가 만든 다음 영상도 마저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땅의 선배 농부들에겐, 그 어느 때보다 위로와 응원이 절실한 때입니다. 


https://youtu.be/uIINAWCDJNM

뉴스타파 - 목격자들 32회 "2015, 쌀 손익 계산서"(201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