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  맑음

○ 유기재배

● 임상역사
- 2개월간 수업에 대한 평가, 회고와 전망
- 임상역사: 개인의 역사를 쓰는 것: 내가 오랫동안 생각해 온 작업과 매우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왜 거리가 느껴지는 것일까? 생각해 볼 문제이다.
- 인터뷰 vs 임상역사 : 차이가 뭘까?
- 아카이브 vs 히스토리
- 서양 심리학, 철학의 단점이 명확하게 무엇일까?
- 지식습득과 체득의 간격을 어떻게 고려하나?
- 임상역사, 개인역사 >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
- 개인역사를 쓰고 공개하는 것의 의미: 사람을 알아가는 기쁨(이것은 치유보다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 치유 Healing vs Recovery
- 누구누구의 역사(김형일의 역사 vs 여준민의 역사) VS 우리의 역사(여준민이 쓴 김형일의 역사)
- 글쓰기 vs 글짓기

● 목공작업: 여름이 끌개차 만들기 계속_나무 바퀴와 아래틀 만들기
방샘이 전동드릴에 연결해서 바퀴를 따낼 수 있는 도구를 사주셨다. 덕분에 나무로 도나스같은 바퀴를 아주 쉽게 만들었다. 저거 없었으면 또 어떻게 만들었을까? 만들기야 만들었겠지만 바퀴하나 깍는데 하루 종일 걸려도 모자랐지 싶다. 여름이가 타는 상자부분하고, 바퀴부분하고 분리하는 방식으로 만들려고 한다. 나중에 수리하기 쉽게, 운반하기 쉽게, 다른 용도로도 쓸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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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  맑음

○ 풀무새벽집회: 사도행전 13장

○ 유기재배

● 임상역사 심포지움: 서울 역사의 풀무간과 공동수업

① 논쟁적 토론 - 발표자 (풀무학교 심현욱), 토론자(서울 역사의 풀무간 김명하)
② 논쟁적 토론 - 발표자 (서울 역사의 풀무간 강변구), 토론자(풀무학교 최문철)
③ 실존적 토론 - 발표자 (풀무학교 김선미), 토론자(서울 역사의 풀무간 박종석)
④ 실존적 토론 - 발표자 (서울 역사의 풀무간 오형일), 토론자(풀무학교 전민우)

   오늘 임상역사 수업시간에는 영남샘이 서울에서 진행하고 있는 역사의 풀무간 사람들이 학교에 내려와, 우리와 함께 심포지엄을 열었다. 임상역사 수업을 진행한 두어달간을 돌아보며 수업내용과 방향에 대해 논쟁적이고, 비판적인 토론과 함께 실존적인 토론도 하고, 학교 선생님들의 강연도 함께 듣고 하는 시간이었다.
   어쩌다보니 논쟁적토론 토론자가 되었는데, 상대 발표자분이 쓰신 열두페이지나 되는 발표문은 토론 전에 제대로 한번 읽어보기도 쉽지 않았다. 토론 시작하기전에 부랴부랴 다 읽기는 했는데, 왠지 좀 이상했다. 토론문이라고 하기엔 좀 색다른데? 하면서 나름대로 아니 억지로 토론거리를 뽑아냈다. 나중에 알고보니, 토론문이 아니라 지난 수업을 회고하는 개인적인 에세이였다. 어쨌든 토론은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해서 잘(?) 마쳤다.
   오후에는 홍샘, 장샘, 정샘의 이야기를 차례로 듣는 시간이었다. 홍샘의 이야기는 자주 듣지만 장샘의 이야기는 처음이어서 아내와 여름이도 데리고 들어와서 함께 챙겨 들었다. 조용히, 힘차게, 여름이를 엎고서, 귀를 기울여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또 행복하고 감사했다.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일을 하며,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말이다. 아내 역시 행복하고 좋단다. 아내와 함께 한 방향을 바라보며 갈 수 있다는 것 또한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리고 감사한 일인지... 감사할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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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와 공부 | Posted by 여름울 2008.03.08 20:59

임상역사_01

2008년 03월 08일 임상역사_01

아래의 내용들은 수업을 들으며 필기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행간이 비어있을 수 있고, 짜임새있는 완벽한 내용이 아니며, 내용 중에는 간혹 잘못 받아 적은 것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 표시는 저의 생각을 덧붙인 것입니다.

* 동무들 과제발표 + 선생님의 질문

역사란 무엇인가? _ 풀무학교 환경농업전공부 최문철

 - 나는 역사를 이렇게 배웟다.
 - 내가 생각하기에 역사는 이런 것이다.
 - 내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역사는 이런 것이다.
 * 제한: 세단락, 단락은 6줄 내외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초, 중,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역사는 태종태세문단세~ 정도인 것 같다. 교과서에서 제공하는 지식은 익힐 수 있었지만, 아직 역사는 나와 나의 생활과는 별로 상관없는 지식일 뿐이었다. 대학 시절 초기에 ‘역사란 무엇인가(E.H. 카)’를 읽으면서 역사라는 것에 대해 어렴풋이 눈을 떴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에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조한욱)’를 읽으면서 비로소 역사에 대한 나름의 시각을 가질 수 있었고, 나와 역사와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역사와 어떻게 대화하고, 또 어떻게 기록을 남겨야 하는 지에 대해서 갈피를 잡을 수 있었다.

해아래 새 것이 없다는 말은 참 의미심장하다. 역사책 속의 이야기들이 단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도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여전히 되풀이되는 일들이며, 나의 개인적인 일상과도 겹쳐지는 것을 발견할 때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는 역사란 당대의 다양한 사람들이 남긴 모든 기록 그 자체이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기록을 남길 때는 알지 못했던 것을 시간과 공간이라는 거리를 두고 한 발짝 물러났을 때 보이는 흐름, 구조, 지혜 역시 역사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제임스 사이어)’을 공부하면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어린아이 때부터 당시까지 성장해 온 나의 의식과 사고의 흐름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인류의 사상이 발전하는 과정과 엇비슷하게 겹쳐지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요즘에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나의 생활과 겹쳐지면서 그 속에서 발견한 흐름과 지혜에서 내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발견하거나, 또 그 방향을 지속할 수 있는 용기와 힘를 얻는 것이 그 것이다.

프란시스 쉐퍼의 편지나 디트리히 본회퍼의 옥중서신이 나중에 책으로 남겨지면서 그들의 역사가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던 것처럼 나의 일상의 기록이 시공간과 주체를 달리하는 오늘과 내일의 이웃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아들, 딸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거울과 나침반이 되어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때문에 꾸준히, 그리고 정갈하게 기록을 담아내는 훈련은 나에게 언제나 숙제로 남아 있다.


덧붙이는 글: http://waterclimber.net/blog/254

배운역사와 생각하는 역사는 많이 다르네요.
생각하는 역사와 일상의 역사도 크게 일치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에 나의 현재 고민에 해답을 주지 못하는 역사는 더이상 하면 안되겠다. 그것은 국가의역사다. 이제는 개인의 역사를 해야겠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임상역사입니다.

온전한 역사를 쓰기 위해서는 그늘진 것들도 써내야한다. 좌절로 점철된 것들. 상처들. 무뎌진것들.  그런 것들을 주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심리학에서는 그림자라고도 이야기하죠.

자신의 어두운 면을 발견하고, 관찰하기 > 그것이 자기치유이자. 자기배려.

이 시간은 역사를 이야기 하면서 치유하는 시간입니다.
스스로 임상역사가라는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이기백의 역사가 아닌 나의 역사를 쓰시기 바랍니다.

* 역사를 쓰는 이유
1. 자기 치유, 자기 배려
2. 자신의 운명을 생각해 보는 것. 그 안에서 황금을 발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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